소청과학회·소청과의사회·아동병원협회, 16일 기자회견 개최
경북대병원 4세 사망・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소청과 기피
소아청소년 안전망 붕괴 위기, 소청과 지원방안 모색 즉각 필요 촉구
양육의료특별법 제정・소아청소년건강정책국 신설 등 비용 지원 제안

[메디코파마뉴스=박애자 기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률 급락과 가천대 길병원의 소아 입원 진료 중단 등 국가적으로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대통령 직속 논의 기구를 마련해 현장 상황에 맞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16일 대한의사협회 회관 대회의실에서 ‘소아청소년 건강안전망 붕괴 위기 극복을 위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소청과 진료 인프라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소청과 전문의들은 향후 2~3년 안에 ▲대학병원 소청과 응급실 및 입원실 폐쇄 가속화 ▲대학병원 소청과 응급환자 입원 난민 현상 초래 ▲타진료과의 소아응급환자 진료 팽배 ▲아동병원 소아청소년 중증 환자 진료 일반화 부담 가중 ▲전문의 감소로 회복 불가능한 어린이 진료시스템 붕괴 가속화 및 재개불능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소청과학회 김지홍 이사장은 소청과 전문 인력 부족으로 3차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소아중환자진료와 응급진료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소아진료 특성상 근무시간이 길고 업무강도가 높은데 반해 수가는 비정상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이사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도 유래 없는 초저출산으로 인한 환자 수 감소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면서 종전 대비 40% 이상 진료량이 급감했다.

김지홍 이사장은 “1차 진료체계가 붕괴되기 시작했지만 노동집약적 필수 진료과에 대한 보상 지원 정책의 변화가 없고 중환자 진료에 따른 의료소송과 의료진에 대한 책임 전가 등으로 전공의 기피 현상도 최악인 상황”이라며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3년 전부터 30%대로 떨어졌다. 급기야 2023년 전공의 지원율은 15.9%까지 폭락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어 “2023년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수련병원은 32%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필요 전공의 인력의 39%만 근무가 가능하게 된다”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수련병원에서는 교수와 전문의들이 업무시간 외에 추가로 당직 근무를 하고 있다. 이미 2년을 경과한 상황에서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과도한 업무와 인력 부족 누적으로 응급진료가 축소되고 이어 병동진료와 중환자진료도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올해 소청과학회가 시행한 전국 수련병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년 전공의 지원이 더욱 악화돼 진료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응답한 수련병원이 75%에 달한다.

그렇다면 소청과는 어떻게 전공의 기피과가 됐을까.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최근 수년 동안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들이 새내기 의사들이 소청과 지원을 꺼리는 이유로 꼽았다.

지난 2010년 갑자기 복통을 느낀 4세 여자 아이가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대구 시내 총 5곳의 병원을 전전하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는데 당시 경북대병원 응급실에 있었던 소아청소년과 인턴과 레지던트 2명이 면허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지난 2017년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역시 소청과가 기피과로 전락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당시 진료상 과실 혐의 가능성에 대해 형사고발이 이뤄지면서 의료계는 크게 반발했다. 최근 대법원에서 해당 사건에 연루된 의료진 전원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현장 전공의들에게는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신생아 진료와 중증환자 진료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청과는 전공의들의 외면을 받게 됐다는 지적이다.

김지홍 이사장은 “무죄 판결을 받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해당 의료진들은 거의 1년 동안 구속됐었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의사 잘못으로 여론재판 하듯 몰아갔다”며 “진료에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나쁘다고 일방적으로 의사 책임으로 돌린다는 건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의미에서 전공의들이 신생아실, 응급실 진료를 꺼리게 됐다”며 “이에 수련병원에서도 전공의의 신생아 중환자실과 응급실 당직 근무는 최대한 배제하고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전공의 지원율은 매년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학회에서는 소청과 진료 대란을 방지하고 전공의 인력 유입 회복과 진료인력난 해소를 위한 정부 지원을 촉구했다.

우선 수가 정상화를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소청과 진료 특성에 맞는 보장 수준 강화로 인력 유입을 유도하고 중증도 중심의 3차 진료 수가 개선으로 진료전달체계를 개편해 부족한 인력을 효율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본 입원진료 수가의 소아연령 가산을 2배 이상 강화해 전공의 인력 유입이 가능한 안정된 진료환경 조성 ▲중증도에 따른 입원 및 행위료 가산율 인상 등을 제시했다.

전공의 수련지원과 지원 장려 정책 시행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흉부외과와 외과에서 시행하고 있는 전공의 임금 지원과 보조인력 비용 지원 ▲전공의 수련과 수련담당 지도전문의 인력 비용에 대한 국가 지원 등이다.

전국 수련병원의 인력 위기 극복을 위한 전문의 중심진료 전환도 촉구했다. 소청과 전공의 수급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3차 거점병원 환자 안전을 위해 고난도, 중증, 응급질환의 전문의 중심 진료체계 전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입원전담전문의 고용지원 ▲응급전담전문의 고용지원 사업 확대 시행 ▲입원전담전문의 관리료 소아 가산 및 소청과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신설 ▲전문의 중심 진료와 전공의 인력 부족을 지원할 보조 인력 고용 지원 병행 ▲병원평가 및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 환자안전 평가점수에 입원전담전문의, 중환자실전담전문의, 응급전담전문의 운영 점수 가산 및 합당한 보상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공의 유입 동기부여를 위해 1차 진료 수가 정상화, 중재 중심 1차 진료 형태 전환, 소청소 필수의료 지원 및 정책 시행 전담 부서 신설도 촉구했다.

김지홍 이사장은 “소아청소년의 국가적 건강안전망이 붕괴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대통령 직속 논의 기구를 만들어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기획재정부, 소청과 의사들이 현장 상황에 맞는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국회는 법과 예산으로 뒷받침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동병원협회는 한 발 더 나아가 양육의료특별법 제정도 요구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18년 일본소아과의사회의 제안으로 시행된 ‘육성의료기본법’에 따라 재정적 지원을 통해 안전한 소아 진료시스템을 갖춘 것처럼 우리나라도 조속히 정부와 여야 합의를 통해 ‘양육의료특별법’을 제정해 어린이들의 생명을 보호기 위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게 박양동 회장의 주장이다.